2026년 2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은 6대 3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상호관세가 위법하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얼핏 들으면 한국 경제에 희소식처럼 느껴진다. 우리나라 수출품에 붙어 있던 15%의 상호관세가 법적 효력을 잃었으니까. 그런데 시장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는 안도했고, 또 다른 일부는 오히려 더 복잡한 국면이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도대체 왜일까? 판결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한국 경제는 앞으로 어떤 리스크에 직면해 있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이번 판결의 핵심 내용부터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 그리고 우리 기업과 정부가 취해야 할 대응 방향까지 차례로 살펴본다.
1. 판결의 핵심 – IEEPA로는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
미국 헌법은 조세 및 관세 부과 권한을 원칙적으로 **의회(Congress)**에 귀속시킨다. 행정부는 의회의 명확하고 구체적인 위임이 있을 때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IEEPA를 근거로 무역적자를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의회 동의 없이 전 세계를 상대로 10~41%의 상호관세를 부과해왔다.
대법원은 170쪽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IEEPA는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위임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는 미국 행정법의 핵심 원칙인 **'중대 사안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에 기반한 판단이다.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은 의회의 명확한 수권 없이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 판결로 영향을 받는 관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모든 교역국에 적용된 보편관세(10%)와 국가별 상호관세(10~41%), 둘째는 캐나다·멕시코·중국에 부과된 펜타닐 관련 관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자동차·철강·알루미늄 품목관세는 이번 심판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판결의 범위가 생각보다 좁다는 의미다.
2. 한국에 적용되던 15% 상호관세, 사라졌지만...
판결 직전까지 한국산 제품에는 15%의 상호관세(미국과의 협상 이후 25%에서 인하된 수준)가 부과되고 있었다. 판결로 이 관세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당일 즉각 반응했다. 그는 판결을 "수치스럽다"고 비난하면서 곧바로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전 세계에 10%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이를 곧 15%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무역법 122조는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최대 150일간,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름표만 바뀌었을 뿐, 실질적인 관세 부담은 거의 그대로 유지된 셈이다. 미국 재무부 장관 스콧 베선트는 "2026년 관세 수익은 사실상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IEEPA가 막히더라도 무역법 301조, 201조, 관세법 338조 등 다양한 대체 수단이 있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결국 한국 수출기업 입장에서 보면 상호관세가 무효화됐다는 뉴스보다 "트럼프가 어떤 대체 카드를 꺼낼지 모른다"는 불예측성이 더 큰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3. 한국 주요 산업별 영향 – 자동차·반도체·철강·뷰티
자동차 – 품목관세 15%는 건재
무역법 232조에 근거한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관세(15%)는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유지된다. 지난해 대미 자동차 수출은 259억9000만 달러로 한국 최대 수출 품목이다. 관세 부담 완화를 기대했던 현대차, 기아 등에는 실망스러운 소식이다. 더불어 무역법 122조에 따른 15% 글로벌 관세가 추가로 얹힐 경우 이중 과세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지도 불확실하다.
반도체 – 품목관세 확대 가능성 상존
반도체는 현재 IEEPA 관세 직접 적용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미국 정부가 무역법 232조를 근거로 반도체 및 파생 품목에 대한 관세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한국무역협회는 "반도체 관세 강화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에도 중장기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철강 – 50% 관세 여전히 적용
한국산 철강에는 232조 기반 50%라는 높은 관세율이 그대로 유지된다. 이번 판결의 수혜와는 거리가 멀다.
K-뷰티 – 반사이익보다 경쟁 심화 우려
흥미롭게도 K-뷰티 업계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제기된다. 미국 내 경쟁 브랜드 상당수가 중국에서 제품을 조달하고 있는데, IEEPA 기반 대중 관세 부담이 완화되면서 이들 브랜드의 원가 경쟁력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화장품 업체들의 상대적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방산 – 영향 없음
대형 선박은 무관세 품목이고, 방산 수출도 대미 비중이 미미해 이번 관세 판결의 영향권 밖에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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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미 투자 3500억 달러 약속 – 이제 어떻게 되나
이번 판결로 가장 복잡한 상황에 놓인 것은 무역 조건보다 대미 투자 약속의 정당성 문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25%의 자동차 관세와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3500억 달러(약 505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그런데 그 조건의 일부였던 상호관세가 위헌으로 무효화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합의를 유지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측이 곧바로 대체 관세를 도입하면서 재협상 논의는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입법 공청회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고, 여야가 조속한 처리 방침을 세웠다. 합의 이행에 소극적으로 나설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 관세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정부로서도 쉽게 방향을 틀기 어려운 상황이다.
5. 관세 환급 – 기대는 크지만 현실은 복잡
위헌 판결로 이미 납부된 관세에 대한 환급 청구의 법적 근거는 마련됐다. 관세청에 따르면 관세지급인도조건(DDP) 방식으로 수출해 직접적인 환급 대상이 되는 국내 기업만 6000곳에 달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환급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구체적인 환급 절차를 정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또한 정산이 완료된 건과 미완료 건의 환급 절차가 달라 개별 기업이 통관 건마다 정산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환급 여부, 금액, 시점 등 세부 기준이 확정되기까지는 법적 소송 절차를 병행해야 할 수도 있다.
6. 진짜 위험 – 슈퍼 301조 조사 확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핵심 리스크는 **무역법 301조(슈퍼 301조)**의 활용 확대다. 301조는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제재 수단으로, 이미 중국 제품에 광범위하게 적용된 바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대부분의 주요 교역국을 포괄하는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국은 미국에 대해 상당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조사 대상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올해 1월 기준 대미 무역흑자는 52억5700만 달러에 달한다. 만약 미국이 301조 조사를 개시하면 관세 부과는 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는 IEEPA 기반의 상호관세보다 오히려 더 다루기 어려운 국면이 될 수 있다.
7. 한국 정부와 기업의 대응 방향
정부는 미국 측 후속 조치를 24시간 모니터링하며 경제단체·협회와 함께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핵심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 대미 협상 전략 재정립이다. 상호관세 무효화로 협상의 전제 조건이 바뀐 만큼,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의 틀 안에서 한국에 유리한 조건을 재설정해야 한다.
둘째, 수출 다변화다. 대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아세안, 중동, 인도 등 신흥 시장으로의 수출 확대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지만 중장기적으로 미룰 수 없다.
셋째, 기업의 관세 리스크 관리다. 관세 환급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통관 건별 정산 여부를 즉시 점검하고, 법률 전문가와 함께 환급 신청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미국 내 생산 기지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관세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투자 타이밍과 규모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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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헌 판결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만능주의에 제동을 건 역사적 결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경제의 통상 리스크를 해소해 준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대체 관세 수단을 동원했고, 앞으로도 다양한 법적 우회로를 통해 관세 압박을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
"이름표만 바뀌었을 뿐, 관세 부담은 유지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한국 기업과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판결 이후의 안도감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미국 통상 정책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적 유연성이다. 수출 다변화, 리스크 분산, 법적 대응 체계 구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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